바이오헬스 기술 투자심사역의 현실은 팍팍하다. 확신이 없다. 기술을 검토한다고 하지만 이해했다고 말할 수 없다. 평생 몸바쳐 연구개발해온 과학자이자 창업자의 세계를 알 수가 없다. 결국 기술을 이해하는 투자심사역이 투자업계의 형님격인 큰손형님 회사에서 투자한다고 했을때 동반투자하겠다고 마음먹는 것이 현실이다. 기술을 이해하고 전망을 좋게 잡아도, 내 본계정으로 투자하지 않고 LP 가 모아준 돈인 펀드로 투자하는 한, 파이팅넘치게 과감히 투자 못한다. 기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자신도 없고 소신도 없기 때문이다. 아쉽다.
우리나라 바이오 신약개발의 역사는 짧다. 당연히 미성숙하다. 바이오벤쳐 붐이 인 것은 1998년 언저리다. 마크로젠이 상장하면서 청소하시던 분까지 최소 7000만원은 벌으셨다더라 하는 이야기가 있었고, 당시 석사과정 학생이던 나는 바이오벤쳐에서 연구하다가 돈도 벌수있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나 뿐만이 아니라 모두 일종의 희망, 환상, 이런걸 가졌다.
개인 사정으로 박사과정을 들어가지 못하고 기업연구소에서 연구원 생활을 하던 나는 기술라이센싱을 하는 사업개발, 투자심사를 하는 위치 등 다양한 시각에서 바이오 프로젝트를 바라볼 수 있게되었다. 그렇게 근 25년이 지나다 보니, 나도 모르게 박힌 철학도 생긴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생각의 습관이나, 생각의 도식이나, 일종의 확증편향, 공감 또는 편견… 뭐 이런 것일 수 있겠다.
내가 컨설팅 서비스까지 하면서 느낀 것이 있다. 그것은 일종의 존경심도 포함되고, 어떨 때는 공감 어떨때는 안타까움이다. 바이오 기업의 IPO 컨설팅은 뭔가 스스로 머리카락을 자르지 못하는 기업들이 클라이언트인 경우가 많다. 고군분투한 역사를 모두 다 속속들이 알아야만 컨설팅을 할 수 있기 때문에, 클라이언트와 속깊은 이야기도 나눌 수 있게된다. 그 회사의 문화도 알게 되고, 결국 그 회사의 역량 수준도 감을 잡게 된다. IPO 단계까지 오는데 있어서 연구개발이 얼마나 지난한지는 나도 경험해봐서 안다. 직접, 간접 경험이다. 물론 내가 연구원을 하고 사업개발을 하던 시기는 우리나라 바이오가 나름 번성했던 2000년에서 2020년까지다. 지금은 아주 투자 혹한기인데, 이때 IPO 컨설팅을 한다는 것은 예전같았으면 공모가를 올리고 제대로 평가받기 위한 시도였다면 지금은 상장 자체가 어렵기 때문이고 기존 투자자들의 exit이 주 목적인 경우가 많다. 그러다보니 성숙하지 못한 기술과 완성도를 가진 기업들이 상장을 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회사를 컨설팅하다보면 때로는 한숨이 나온다. 그리고 이렇게 투자가 되지 않는데도 여기까지 끌고온 것을 보면 대표님이하 경영진이 얼마나 마음고생이 있었을지도 상상이 간다. 또한 IR 을 하면서 공감을 얻지 못하는 연구자들에 대한 공감과 동시에 연민도 든다. 신규한 사이언스를 신규한 작용기전으로 통찰력을 발휘해서 의약품 연구개발을 하고 있고 그 한 분야에 인생을 올인한 분들이다. 그런데 그걸 잘 이해하지 못한다고 평가절하하는 투심자들이 많다. 겉으로는 예의바르게 말하나, 뒤로 돌아서면 업계 다른 투자사들에게 서로 레퍼런스체크하면서 빅 투자자가 가는대로 따라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마음에 안든다.
나는 기술을 이해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름 기술에 대한 확신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 기술의 현 개발단계는 완성된 상태가 아니다. 그러니 비상장회사에 투자하는 것이다. 그 불확실성은 언제나 존재한다. 임상시험에 들어가기 전에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그러니 그 아무도 모를 때 베팅하는 것이다. 그러니 작은 돈으로 투자할 수 있는 기회가 있는 것이고, 그 위험에 배팅했으므로 높은 멀티플을 기대해도 되는 것이다. 물론 투자는 돈을 잃을 수 있다. 그걸 너무 두려워 한다면, 그냥 대부업을 하면 된다.
기술을 이해하지 못하는데 투자를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건 아마 그 외의 것들에 매료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기술이 좋은 것 같은데 이해는 안되고, 투자를 해야 되나 말아야되나 고민된다면 빅투자사 형님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조회해 보게 된다. 그리고 그들이 투자 한다고 하면 마음이 긍정적이 되고, 그렇지 못하다면 마음이 모멘텀을 잃는다.
기술에 대해 안다면, 소신있게 투자의견을 내면 좋겠다. "아니면 아니다, 기면 기다." 이렇게 말이다. 기인것 같은데 빅 투자사 형님한테 물어보겠다? 이것 물론 참고할만 하고 참고하는 것은 좋다. 그런데, 이게 결정자가 되는 것 같다. 아쉽다. 물론 내 생각이 완전히 맞을 수는 없고 제3자 의견을 조회하는 것은 객관성을 가지기 위해서 좋은 접근이다. 하지만 다 좋은데 빅투자자 형님이 안하신단다, 그러니 우리도 다시 생각해보자. 이건 아니지 않은가?
너무 극단적인 것 같은데, 이런 분위기 다 있을 것 같다. 이게 다는 아니겠지만, 어느정도는 바이오헬스 투자심사역의 현실이다.
그래서 나는 빅 투자자 형님이 되려고 한다. 언젠가.
빅 투자자는 큰 돈, 큰 손을 가진 사람이나 회사일 수 있지만, 기술에 대한 식견이 어느정도 수준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게 좀 힘들긴 하다. 사이언스가, 기술이 기존의 경험과 달리 너무 빨리 발전하고 있기 때문에 경험자라고 해서 알수가 있는게 아니기 때문이다. 익숙해질 수 있는 사이언스가 없다. 그래서 부단히 공부하고 트렌드를 봐야 한다.
컨설팅해서 번 돈으로 먹고, 투자해야 하다보니 시간이 너무 없다. 투자 검토를 하는데 머리를 쓰고 싶은데 뇌력이 남아나질 않는다. 모든 것이 너무 피상적이다. 결국 기술적, 경쟁랜드스케이프 분석이 깊게 들어가지 않은 상황에서 기계적으로 하는 것 같아서 아쉽다.
그렇지만 일개 연구원으로, 기술을 사업화하는 사업개발담당자로, 그런 기술에 그랜팅을 심사하는 투자심사역으로, 그리고 이젠 그런 회사들의 컨설턴트로 잔뼈가 굵은 나름의 전문가로서, 새로운 기술이 진정 이 랜드스케이프에 얼마나 신규하고 진보한 것이고, 그리고 그것을 개발하는 사람들이 어떤 정신과 자세를 가지고 있는지 공감하는 자세로 계속 learning 하고 그 인사이트를 축적한다면, 아마 이젠 투자할 자금만 있다면 빅 투자자 형님이 되는 건 시간문제일 것이다. 시간문제이긴 한데,.. 나이가 계속 들고 있어서 이게 걱정이다. 시간이 많이 안들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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